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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기행 낙동강 도보탐사

망국의 전설이 어린 태백 두문동재

입력시간 2009-06-21 오전 4:56:22

낙동강 발원지는 어디인가? 옛 문헌들에 의하면 낙동강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산 황지다. 1486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삼척도호부」편에 “황지는 도호부의 서쪽 1백 10리에 있으며 물길이 남쪽으로 30리를 흘러 작은 산을 뚫고 나가니 천천(穿川)이라 하는데 곧 경상도 낙동강의 원류”라고 했다.

 

또 조선의 모든 지리서들도 낙동강 발원지는 황지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1978년 김우관 교수는 25만분의 1 지형도상에서 태백산 일원에 있는 1634곳의 시원지를 일일이 자로 재어 조사한 결과 천의봉 너덜샘이 최장 발원지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 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실측에 참여한 학계는 물론이고 국토지리원에서도 낙동강 최장발원지가 천의봉 너덜샘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태백시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여전히 황지를 발원지로 고집한다.

 

두문동재 아래 천의봉 너덜샘 표시석 

 

너덜샘이 황지보다 10여 킬로 상류에 있으므로 최장발원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없을 듯 보이지만, 실상 태백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듯 싶기도 하다. 우선 황지는 태백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데다 커다란 연못을 이루고 있는 황지와 자그마한 옹달샘에 불과한 너덜샘을 비교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못내 아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추전역을 떠난 우리는 두문동재를 넘어 너덜샘으로 향했다. 너덜샘은 추전역에서 두문동재 너머 조금 아래쪽에 있다. 두문동재. 해발 1268m다. 해발 855m의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역이요, 두문동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다. 두문동?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대체 고려의 충신들이 숨어 살았던 두문동과는 무슨 관계일까?

 

두문동재 꼭대기 1268m 


사마천의 『사기열전』「백이숙제」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영주의 후예로서 상나라 서쪽 서백의 아들 희발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 무왕이 되자 고죽국 영주로서 받는 녹을 받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숨어들어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 뒤에 왕미자라는 사람이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주나라의 고사리를 캐먹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고 책망하자 이들은 마침내 고사리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고려가 조선에 멸망하자 고려의 선비들도 백이숙제의 전철을 따라 충절을 지키고자 했다. 송의 주자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고려의 선비들에게 수양산의 고사는 지침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현재의 경기도 개풍군에 위치한 두문동에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조복을 벗어 던지고 들어가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왕조는 군사를 풀어 두문동을 포위하고 이들을 모두 불살라 죽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세인들은 이들 72인의 충신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 부르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로 이들의 충절을 기렸다. 함께 간 어느 일행의 설명에 의하면 그 두문동 충신들 중에 7명이 살아남아 이곳 두문동재 아래 정선 땅에 피난 와 살았다는데 그 자연부락의 이름이 두문동이라 한다. 듣고 보니 마음이 숙연해지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두문동재에서 잠시 내려 3월말에 내린 눈구경을 하며 놀았다. 이틀후 이곳엔 더 많은 폭설이 내렸다.

 

수양산이나 두문불출의 고사가 요즘의 시선으로 보자면 한없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義)가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두문동은 그 이름만으로도 커다란 표석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3월의 마지막 주말이었지만 두문동재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은 사람들을 동심으로 끌고 가는 마력이 있는 것일까?

장난끼가 발동한 사람들은 눈을 뭉쳐 서로 던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눈 위에 벌렁 누워 봄볕이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럴 때 보면 어른 아이가 따로 없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너덜샘으로 향했다. 너덜샘은 황량했다. 김우관 교수와 또 그 이후에 몇 분이 세워두었다는 낙동강 최장발원지 푯말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치워버린 것일까?

 

다만 너덜샘이란 돌로 만든 비석과 샘터만이 이곳이 너덜샘임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고사를 지냈다. 전주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부어놓고 신정일 선생은 축원문을 읊었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는 축원이었다. 고사를 지낸 우리는 음복으로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전주막걸리가 참 맛있다. 전주비빔밥, 한정식, 전주는 맛의 고장이다. 그러고 보니 막걸리 맛도 기가 막히다.

 

너덜샘에서 낙동강종주의 무사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계곡을 따라 10여 킬로 아래에 있는 황지를 향해 출발했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의 출발점은 황지가 될 것이다. 신정일 선생은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낙동강 발원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낙동강 최장발원지는 너덜샘입니다. 국립국토지리원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나온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어요. 그러나 어쨌든 황지가 발원지라고 하는 주장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최장발원지는 너덜샘이고 역사적 발원지는 황지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말하자면, 학계와 지역주민 의견의 절충인 셈이다. 봄볕에 새하얀 눈을 본 즐거움에 장난스러워진 내가 일부러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했다. “저, 공지사항 있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왔는데요. 무려 10여 년만에 흰 눈을 처음 구경했네요. 그것도 봄에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눈값 내놓으라고 난리다. 눈값이라니…. 눈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자유재 아니었던가?

 

하긴 이렇게 경비를 들여 태백산 꼭대기에 오지 않고서는 쉬 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눈이고 보면 돈을 내야만 누릴 수 있는 경제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수도물을 믿지 못해 사람들이 마트에서 돈을 주고 생수를 사먹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쨌든 이날 이후로 눈값을 언제 내겠느냐는 시비(?)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황지연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발걸음은 왁자한 웃음소리와 더불어 경쾌하다. 봄의 전령사들이 밝게 빛나는 태양아래 삐쭉거리며 고개를 내미는 것이 차창밖으로 언뜻언뜻 보인다. 차창으로 달려드는 따스한 햇볕에 사람들의 얼굴색도 밝아지고, 푸근해진 마음은 초면의 어색함도 녹여내는 듯하다. 정말 화창한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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